3월 15일, 도곡동 마트 와인 코너 앞에서 걸음이 멈췄다.
샤또 몬텔레나. 진열대 띠지에 “파리의 심판이 선택한”이라고 적혀 있었다.
1976년, 파리에서 프랑스 심사위원들이 라벨을 가린 채 와인을 매겼다. 다들 1등은 당연히 프랑스일 거라고 했다. 그런데 화이트 부문 1위는 캘리포니아에서 온 몬텔레나였다. 심사위원들도 놀란 결과였다.
나는 이 이름을 안다. 내가 만든 것에 이 이름을 붙였으니까.
그 이름을 떠올리게 한 일은, 오래전 다른 회사에서 있었다.
그 회사에선 데이터가 필요했다. 사람들이 사이트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야 했는데, 측정 도구는 오래전부터 방치돼 있었다. 하루에 몇 명이 다녀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손볼 사람은 없었다. 다들 제 일로 벅찼다.
회식이 있던 밤이었다. 자리가 파하고 사무실에 잠깐 들렀는데, 캔틴에 대리 한 사람이 남아 쉬고 있었다. 고민을 털어놓으니 그가 말했다. “제가 한번 해보겠습니다.”
둘이서 작은 도구를 만들었다. 큰 솔루션을 사 오자는 쪽도 있었다. 다른 부서에서 몇 번이고 그쪽을 밀었다. 완성된 제품, 검증된 이름. 그런데 막상 붙여보니 정확도도, 옮겨 심는 속도도, 쓰기 편한 것도 우리 쪽이 나았다. 작은 도구가 이겼다. 그 도구는 나중에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 한몫을 했다.
큰 솔루션이 싫었던 게 아니다. 나는 큰 것도 숱하게 들였다. 문제는 크기가 아니라 맞느냐였다. 그 문제에는 우리가 만든 크기가 맞았다.
그래서 마지막 회사에서, 나는 다시 만들었다.
거긴 더 열악했다. 마케터 한 사람이 너무 많은 일을 했다. 아침이면 브라우저를 열고, 일하러 카페와 블로그와 커뮤니티에 들어가, 사람들의 반응을 읽고 정리하고 보고했다. 전부 손으로.
개발자 한 사람과 도구를 하나 만들었다. 그가 일하는 흐름 옆에 AI를 두는 도구였다. 같은 화면을 함께 보며 거들고, 짚어주고, 권했다. 끝에 한 번 분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일하는 내내 곁에 있었다. 거기서 나온 것들은 곧 할 일이 되어 현장 담당자에게 넘어갔다. 일이 빨라졌고, 터지기 전에 막은 일도 늘었다.
요즘 다들 브라우저 에이전트를 말한다. 화면을 대신 읽고 일을 거드는 것들. 그것들에 견줄 만한 건 아니다. 다만 그 말이 흔해지기 전에, 우리는 방향이 닮은 무언가를 작게 만들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걸 AI 전환이라 부르고, 그전엔 디지털 전환이라 불렀다. 이름만 바뀌었지 하는 일은 같았다 — 문제에 맞는 크기를 찾아 붙이는 것.
이 도구에 몬텔레나라는 이름을 붙였다. 만든 사람들과, 이게 자리를 잡으면 그 와인을 한 병 열기로 했다.
그 잔은 열리지 않았다.
그 와인은 구하기가 늘 어긋났다. 한번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마주쳤는데, 그날은 들고 들어올 수 있는 병 수를 이미 다 채운 뒤였다. 눈앞에 있어도 가져올 수 없었다.
그런데 그날은 너무 쉽게 거기 있었다. 이번엔 가져올 수도 있었다. 다만 이제 함께 들 잔이 없었다.
사진을 찍어, 함께 만들던 사람들에게 보냈다. “찾을 땐 없더니, 오늘은 이렇게 쉽게 보이네요.”
사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라벨을 가리고 매기면, 맞는 것이 이긴다. 나는 그걸 몇 번 봤다. 그러니 오늘 잔을 들지 못한 것도 괜찮았다. 다음에 들 일이 생기면, 그때 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