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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 시작

3월 14일, 달력에 아무것도 없었다.
전날까지는 빈칸이 없었다.

전날 오전에도 회의가 있었다. 구성원들과 정기 회의를 마치고 임원실에 앉았을 때 인사팀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잠시 뵐 수 있냐고 했다.

나는 GTD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Getting Things Done. 할 일을 목록으로 만들고, 처리하고, 넘어가는 방식. 개발자로 시작해서 CTO가 됐다. 25년이 걸렸다. 그 사이 목록의 내용은 바뀌었지만 방식은 같았다. 하루에도 수십 가지 일을 그렇게 처리했다. 그 리듬으로 오래 살았다.

다음날 아침, 처음 한 일은 헤드헌터를 검색하는 것이었다. 구직 플랫폼을 찾고, 이력서를 꺼내고, 연락 안 하던 지인들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목록이 바뀌었을 뿐, 몸은 같은 방식으로 움직였다. 그 목록 끝에 항목 하나가 더 있었다. 개인 사이트.

블로그를 시작했다. 실리콘밸리에서 매일 핫한 뉴스가 쏟아지고 있었고, 그걸 한국어로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AI를 써서, 하루 3~5편씩. 처음 20편쯤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50편쯤 지나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 쌓이는데 아무것도 쌓이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앱도 만들어야 했고, 페르소나를 바꿔보기도 하고, 템플릿을 다양화하기도 했다. 개선하면서 가면 나아지겠지 했다.

130편이 됐다. Search Console은 중복 콘텐츠라고 했다. 인덱싱은 되는데 트래픽이 늘지 않았다. AdSense는 심사를 거절했다. Thin content.

나중에 알았는데, AI가 문제가 아니었다. 번역이 문제였다. 실리콘밸리 뉴스를 가져다 한국어로 옮겼는데, 그 안에 내 생각이 없었다. 130편을 쓰는 동안 내가 쓴 문장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이 사이트를 다시 만들었다. 이번 목록에는 내 생각이 들어간다.

앞으로 쓸 것들이 있다. 25년 동안 개발자와 임원으로 살면서 생각했던 것들, 지금 만들고 있는 것들, 아직 시작하지 못한 것들. 데이터와 기술에 관한 이야기도 할 것이다. 잘 됐거나 잘 안 됐거나, 내가 직접 겪은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