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가 퇴사하면, 맥미니를 영입한다."
언젠가부터 이런 말이 돌았다. 링크드인에서, 입에서 입으로. 마침 AI 코딩이 한창 뜨겁던 때였다. 책상 위에 맥미니가 줄줄이 쌓인 사진들도 함께 떠다녔다.
웃펐다. 웃긴데, 어딘가 서늘했다.
사실 나도 맥미니가 갖고 싶었다. 주변에도 산 사람이 꽤 됐다. 나만의 비서를 띄워두고, 공개된 LLM을 직접 올려 써보고 싶었다. 와이프가 허락만 했으면 샀을 거다.
그러니까 저 말은 내게 남의 일이 아니었다. 매일 AI로 코딩하고, 맥미니를 탐내던 사람이었다.
웃음보다, 걱정이 앞섰다.
사람들은 나를 "변화의 에이전트"라고 불렀다. 여러 회사를 거치며, 내가 이끈 일은 대체로 변화였다.
한 회사에서, 모바일 앱의 첫 화면을 다시 짠 적이 있다. 위쪽 카테고리 아이콘에서 시작해 구매까지 이르는 길을 데이터로 따져봤다. 매출 차이는 컸는데, 거기에 붙은 사람과 예산은 거의 비슷했다. 큰 근거 없이 자리만 잡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콘 몇 개를 없앴다. 남은 것은 매출 순으로 다시 놓았다. 사람과 예산도 그렇게 옮겼다. 폭발적인 성장은 없었다. 다만 낭비가 줄었고, 처음으로 데이터로 말할 수 있게 됐다.
그때 알게 된 게 있다.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던 대로 하는 일에 익숙한 것이다. 그 익숙함을 흔드는 게 변화를 이끄는 일의 절반이었다.
한편, 나는 매일 AI로 코딩한다. 호기심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일상의 일부다. 맥미니가 갖고 싶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 그 변화를 이끌라고 불려가기도 한다. 최근에, 두 회사에서 비슷한 자리를 제안받았다. 요건은 둘 다 AI 코딩과 거버넌스였다.
한 곳과는 한 번 만났다. 커피챗이라기보다 티타임에 가까웠다. 서로 사정이 맞지 않아, 잠시 멈춰 두기로 했다.
다른 한 곳은 정식 인터뷰까지 갔다. 막상 해야 할 일들을 들여다보니 내가 맞는 자리는 아니었다. 거절했다.
그즈음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벌어지고 있었다. 글로벌 기업들의 대량 해고, AI 코딩의 부상, 맥미니의 그 사진과 그 말. FDE·AI FDE 같은 새 직함이 채용 공고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AI 코딩 대회들도 잇따라 만들어졌다. 어디로 갈지 정답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이 변화의 세 자리에 다 서 있는 셈이다. 변화를 이끌었고, 도구를 매일 쓰고, 다음 변화로 다시 불려간다.
그 밈이 마음에 걸린다. 너무 단순하다.
나는 AI 코딩에 찬성한다. 매일 쓴다. 그래도, 둘은 다르다 — 도구를 잘 쓰는 일과, 사람을 대신하는 일.
먼저, 모두가 그 대상은 아니다. 개발자마다 선호가 너무 다르고, 공통 교육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정책도 거버넌스도 베스트 케이스도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이제 막 시작된 변화다. 그래서 잘 쓰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AI가 끝까지 가져가지도 못한다. 판단, 아키텍처, 디버깅, 소통 — 어디든 절반 이상은 결국 사람이 들어가야 했다. 적어도 내가 본 한에서는 그랬다.
대신, AI는 잘 쓰는 사람을 거든다. 주변에서 많이 봤고, 나도 그렇다. 예전엔 한 번에 한 가지 일에 붙어 있었다면, 지금은 동시에 몇 가지를 굴린다. 다루는 일의 양 자체가 많이 늘었다. (착각이 섞여 있을지도 모르지만, 체감은 분명하다.)
회사에서 도입을 검토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코드 리뷰와 리팩토링에 먼저 도입하고, 일부에게 임시로 권한을 줬다. 그러나 전사 도입은 미뤘다. 데이터 플랫폼 거버넌스가 먼저였기 때문이다. 잘 쓰려면 그 토대가 있어야 했다. 보안 요건도 그해 들어 크게 바뀌고 있었다.
그러니까 "개발자가 퇴사하면 맥미니를 영입한다"는 그 말은, 두 가지를 같은 일로 봤다. AI가 사람을 거드는 것과, AI가 사람을 대신하는 것. 둘은 다르다. AI 코딩은 사람을 대신하는 일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면 다른 질문이 남는다.
넓은 의미의 대체 — 사람의 자리를 줄이는 일 — 은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 그게 정말 성공적인가?
내가 변화를 이끌어 보니, 답은 늘 비슷했다. 변화로 자리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이 새 역량을 만들어 소프트랜딩할 수 있게 해줘야만, 그 변화는 굴러갔다. 실패가 있어도, 그 길만 열어두면 다음으로 이어졌다. 그렇지 않으면, 비용은 줄어도 다른 데서 문제가 생긴다. 장애가 잦아지거나 한 번에 커진다. 역할과 책임의 경계가 흐려진다. 결국 수익성이나 지속성에서 더 크게 치른다.
두 장면이 떠오른다.
한 사례. 기획·운영을 하던 두 사람이 사내 커리어마켓을 통해 분석가로의 직무 전환을 시도하던 중이었다. 내가 직무에 대한 코칭을 했고, 그들이 받은 과제 — 사내 식당 메뉴 수요 예측 — 를 끝까지 같이 풀었다. 결국 둘은 직무 전환까지 가지는 않았다. 다만 그 과제의 결과를 기존 부서로 가져가 실제 업무에 녹였다. 부서는 그대로였지만, 새로 익힌 역량 덕에 다음엔 다른 방식이나 다른 자리로도 일할 여지가 생겼다.
다른 사례. 분석가에서 데이터 사이언스로 옮긴 사람이 있었다. 그 회사에서 분석가 직무는 줄어드는 중이었다. 두 분기쯤 걸렸다. EDA부터 모델 서빙까지 해냈다. 지금은 큰 회사 데이터 사이언스 부서에서 잘 일하고 있다.
두 사례 모두, 변화로 밀려나는 사람이 새 역량으로 자기 자리를 다시 만든 경우다. 누군가는 자리를 옮겼고, 누군가는 자리를 지킨 채 일을 바꿨다. 어느 쪽이든, 변화 다음을 만든다는 점에선 같았다.
그게 내가 본 지속 가능한 대체의 모습이다. 그게 없으면 — 그냥 비용 줄이기다. 그것도 아주 한시적인 효과일 수도 있다.
가까이서 본 적이 있다. 어느 시기, 같은 직급의 헤드 여러 명이 한꺼번에 자리에서 내려왔다. 경력직으로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나는 예외였다.
그날 이후, 그분들이 어떻게 됐는지 — 누가, 어떻게 책임을 졌는지 —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회사는 다음 분기로 넘어갔다. 누군가는 옮겼을 것이고, 누군가는 쉬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같은 무게의 자리를 다시 찾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일은 그때만 있었던 게 아니다. 변화의 이름 아래, 자주, 조용히 일어난다.
그러면 묻고 싶어진다. 대체된 그 자리들의 뒷일은 누가 졌나? 회사가? 리더가? 본인이? — 대개는 본인 몫이었다. 자기 손으로 다음 자리를 만들어야 했고, 그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여기에 책임의 공백이 있다. 변화에는 진심이면서, 그 변화로 자리가 사라진 사람의 다음에는 진심인 곳이 거의 없다.
내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던 건 능력 때문이 아니다. 그저 그날, 그 자리에 막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다시 그 사진을 떠올린다. 줄지어 놓인 맥미니들. 그 자체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켜고, 묻고, 답을 다시 묻는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움직인다.
정해진 건 없다. 그래서 가능한 일도 많다. 나는 그쪽을 더 보려 한다 — 부정보다 긍정 쪽을, 멈춤보다 성장 쪽을.
그 세 자리에 여전히 서 있다. 변화를 이끌었고, 도구를 매일 쓰고, 다음 변화로 다시 불려가는 자리에. 어디로 갈지는 모른다. 다만 다음을 만든다. 계속 성장한다.
사실 처음 보는 흐름은 아니다.
팔란티어 FDE는 2010년부터 본 회사다. 그때 그 회사 제품 이름은 슈퍼맨이 사는 도시와 배트맨이 사는 도시였다. 온톨로지는 N사 테마검색에서 2년 가까이 직접 만들어 서비스에 얹어 봤다. GPT가 나오기 전, 구글 BERT로 시멘틱 검색을 만들어 본 적도 있다. UI·UX 자동 생성은 2003년에 한 번, 2010년에 또 한 번 — 큼직하게 두 번 시도했다.
그래서 안다. 큰 흐름은 늘 있었다. 다만 이번엔 LLM이 등장했고, 2026년 2월쯤 Opus 4.6이 나오면서 AI 코딩이 정말 쓸 만해졌다. 그 축 하나가 변화를 빠르게 굴리고 있다.
아직은 그 속도에 뒤처지고 싶지 않다.